강화도 10

[강화도 기행] 강화지도, 강화대교...

강화도 당일치기 여행코스!~ 강화대교-(용흥궁과 성공회성당)-고려궁터-(강화산성 서문, 연무당 옛터, 곤충농원)-고인돌- 역사관-광성보-덕진진-초지진-전등사-초지대교. 그리고... 강화도에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가 많은 이유~~~~ 인터넷에서 본것에 의하면... 하하... 강화도는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곳입니다. 조선 후기에만 해도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체결 등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답은 강화도의 위치가 갖는 중요성 때문입니다. 침략 세력은 당연히 조선의 수도인 서울을 노립니다.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한 침략이 수월합니다. 그러려면 한강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강화도는 한강 입구에 위치합니다. 강화를 차지하지 않고는 서울로의 진격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프랑스군이나 미군이..

ver1.0/습작사진 2007.01.14

[강화도 기행] 강화역사박물관, 탱자나무...

강화역사박물관... 그리고 탱자나무 역사박물관에는 강화도의 선사시대부터의 유물과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았던 만큼 전쟁사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탱자나무 사기리 탱자나무는 적병이 성벽 밑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로 높이 4m, 밑둘레 1m, 수령은 약 400년이다. 땅 위 2.8m 높이에서 세갈래로 갈라져 용트림 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79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4월이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노랗게 탱자열매가 익는다. 이 탱자나무는 갑곳리의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여기서 잠깐... -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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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기행] 강화역사박물관 - 금속활자

금속활자발상중흥 기념비 , 박물관에서본 목판 금속활자에 대해 잠깐... 고종 19(1232)년 이전 기원설 고종 19(1232)년 이전 기원설은 주자본(금속활자본)을 중조(번각)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책끝에 나타나는 "이에 공장들을 모집하고 주자본을 중조하여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고자 하는 바이다. 기해(1239)년 9월 상순 중서령 진양공 최이는 삼가 기록하는 바이다"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중조본의 경우 몽고군이 침략해와 강화도로 천도한 기해(1239)년 9월에 중조한 것이므로, 중조의 원본이었던 금속활자본은 강화도로 천도하기 전에 이미 개경에서 간행되었던 것임을 시사하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ver1.0/습작사진 2007.01.14

[강화도 기행] 강화역사박물관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라 전쟁이 많았다고 한다... 외세의 침입에 맞서 싸운 선조들의 영혼을 기리며... 잠깐 상식... 강화의 옛 이름은 갑비고차라 불리웠고,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군제를 두어 혈구군이라 칭하였으며, 신라때에 이르러 해구군으로 개칭하고 태수를 주재시켰다. ... 고려조에 이르러 태조 22년에 현으로 개편되고 이어 현재 지명인 강화군으로 불리웠다. 강화는 국가에 커다란 변란이 있을 때마다 제 2의 서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외적이 침입할 때마다 조정에서는 강화로 천도함으로써 강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강화는 39년간이나 사실상의 고려조의 왕도 역할을 하게 되었고,그 후에도 수차의 천도가 있었던 바 처음으로 강화에 천도한 것은 고려 23대 고종이었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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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기행] 강화역사박물관 - 홍이포

홍이포.. 중국 청(淸) 나라와 조선 영조 때부터 사용되던 대포라고 한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 오랑캐 장수 구왕이 제영의 군사 3만을 뽑아 거느리고 삼판선 수십 척에 실은 뒤 갑곶진에 진격하여 주둔하면서 잇따라 홍이포를 발사하니, 수군과 육군이 겁에 질려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적이 이 틈을 타 급히 강을 건넜는데, 장신•강진흔•김경징•이민구 등이 모두 멀리서 바라보고 도망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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